우연히, 한 소식지에 실린 콩트를 보았다. 세끼 밥을 집에서 모두 먹는 삼식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하면 맞을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사람은 우리 어머니였다.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기면서 나에게 물으신다. "저녁에는 뭐 먹냐?" 이것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있는 거 먹죠~"
민자의 남편은 거의 창작활동에 몰입한 예술가처럼 진지하게 수저질을 하고 있다. 밥 한 톨이라도 흩어질세라 그러모으고 국물과 건더기의 배합이 맞춤하게 떠서 입안으로 쏙 밀어 넣는 짓이 마치 예술행위의 한 장면 같다.
민자는 한 때 남편의 그런 식사태도가 깔끔함과 신중함과 철저함과 과단성과 강한 생활력까지 암시하는 것이라며 반한 적이 있다.
그런데 결혼생활 사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세상에 그 밥 먹는 일 말고는 딴 일이 없는 사람처럼 식사에 열중한 늙은 남편을 보면서 ‘몰입해서 먹는다’가 아니라 ‘코를 박고 먹는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다.
강하고 아름답고 멋있어 보이던 식사태도가 점점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혼자 속으로 궁금해하던 민자는 문득 남편에게 물었다.
“내 여학교 때 친구 기숙이라고 생각나세요? 예쁘고 얌전하고.”
“자네 친구 중에 예쁘지 않고 얌전치 않은 친구도 있었나?”
“아, 그랬나? 아무튼 그 친구를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났어요. 여전히 예쁘고 얌전한 모습으로 4호선 지하철 안,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거예요. 내가 여학교 동창모임에 나가지 않았으니까 몇 십 년 동안 걔를 볼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한때 한 방에서 먹고 잔 친구를 몇 십 년만에 지하철 안에서 만나다니 얼마나 신기해요?
옆얼굴이 너무 낯익어서 정면으로 보기위해 출입문 위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는 척하고 일부러 잠시 일어났다 앉았죠. 역시 그 친구더라구요. 마침 차창 밖으로 멀리 국립현충원의 벚꽃이 하얗게 보일 때였죠.
무조건 동작역에서 같이 내렸어요. 현충원의 수양벚꽃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그친구 두 번째 결혼했다가 얼마 전에 헤어졌대요.”
“두 번이나 했어?”
“근데 그 두 번째 결혼이 그놈에 밥 때문에 채 일년도 못 견디고 끝났다네요.”
“그놈에 밥 때문이라니?”
“하루 세끼 밥 말이에요. 밥.”
* *
“우리 둘이 자취하던 그 시절에 내가 결혼할 단계까지 갔다가 헤어진 남자 기억하니? 김주섭이라고. 우리 셋이 삼청공원에 놀러간 적도 있잖아.”
“그래 기억나. 그 양반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것 때문에 너희들 헤어졌지 아마. 넌 고향에 계신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 때문에 도저히 같이 갈 수 없었고.”
“맞아. 그 사람을 얼마 전에 우연히 롯데호텔 앞에서 만났어. 지금 우리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남편과 사별하고 먼저 보낸 남편에 대한 남은 정도 몸에 익은 습관처럼 된 시기였지. 그도 상처를 했고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탐색 차 자주 온다는 거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양쪽 다 자식들은 결혼시키고 혼자 사는 처지라는 걸 알았어. 옛날처럼 데이트라는 걸 몇 차례하고 결합해서 안될 일이 뭐가 있겠나 생각한 거지.
그 왜 운명적인 만남 어쩌고 하잖아? 몇 십 년 동안 만나지 못하던 사람들이 하필이면 홀아비 과부가 되고 나니 만나게 되냐고? 입으로 말은 안 했지만 두 사람 다 속으로는 이건 운명이다 했겠지. 급기야 황혼재혼이란 걸 했어. 그런데 말야. 가정을 이룬다는 게 세끼 밥해 먹는 일이라는 걸 이 멍청이가 깜빡 잊어버렸던 거야. 밖에서 만나 밥 사 먹고 차 마시고 여행 다니는 것과는 또 다른 그 무엇이라는 걸 잊어버렸던 거지. 화려한 운명적 만남 그거, 소박한 세끼 밥을 못 당한 거야.
이 남자 아침 먹고 돌아서면 오늘 점심 뭐 먹지 하고 점심 먹고 돌아서면 오늘 저녁 뭐 먹지 하는데 나중에는 그 밥 소리만 들어도 토할 것 같았어. 누굴 만날 약속이라도 할라치면 집에서 점심 먹고 난 후에 만나서 저녁 먹기 전에 헤어지도록 하는거야. 다른 바깥 볼일도 꼭 그 오후 시간대에 하더라고. 약속 전화가 오거나 갈 때마다 나는 속으로 설마 오늘은 점심약속을 하겠지 하고 귀를 기울이는데 이 남자 거의 번번이 점심을 집에서 먹고 천천히 차나 마시지 하는 거야.
아내가 해주는 세끼 밥을 먹게 된 행복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이 남자와 남편 죽고 몇 년간 누리던 그 지고한 자유를 절대로 뺏기기 싫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겠니? 헤어지는 일밖에.”
가족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난 민자가 갑자기 깔깔거리고 한바탕 웃고 나서 말했다.
“너네 두 번째 남편 이름이 삼식이었구나.”
“삼식이가 누구니? 김주섭이라니까.”
여전히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민자가 설명했다.
“하루 세끼 집에서 밥 먹는 모든 남편은 우리 삼식이고 두 번 먹는 남편은 우리 이식이고 하번은 우리 일식이야. 우리 남편도 우리 삼식이거든. 은퇴하고 집으로 들어간 영택이들이 대체로 우리 삼식이가 되는거지. 식사문제와 관계없는 호칭은 우리 영감택이의 준말인 우리 영택이야.”
드디어 예쁘고 얌전한 기숙이가 환한 벚꽃 아래에서 벚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얘는 남의 심각한 이야기를 코미디로 만드는 버릇은 여전하고.”
* *
물론 민자는 남편에게 기숙의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 부분인 삼식이와 영택이 대목은 생략했다. ‘우리 삼식이’와 ‘우리 영택이’가 자신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 그런 말이 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밝힐 수는 없었다.
삼식이가 우스개로 등장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민자는 단 한번도 집에서 삼식이를 입밖에 낸 적이 없었다. 동창회 한답시고 여자들이 모여 앉아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남편들 조롱하고 신성한 식사를 모독한다는 사실을 숨기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록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친구들의 ‘우리 일식이’와 ‘우리 이식이’를 부러워하고 드높은 목소리로 ‘우리 삼식이’를 들먹이며 자신을 비하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하더라도 그런 적 없는 것처럼 시침이 뚝 떼는 것이다.
민자는 그녀의 삼식이가 기숙의 사연을 듣고 깊이 깨달은 바가 있기를 은근히 바랐건만 반응은 딴판이었다.
“그 여자 미친 거 아니야? 밥하기 싫어서 이혼을 하다니?”
민자는 속으로 ‘아이고, 우리 삼식이 어디 갈라꼬? 적어도 위험신호는 볼 줄 아라야지.’ 했다.
“딱히 밥하기 싫어서라고 말할 일이 아니죠. 좀더 미묘한 문제라고요.”
민자는 친구의 이혼 이유를 너무 저차원으로 끌어내린 게 제 책임인양 황급히 자유 어쩌고 하면서 보충 설명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미묘하기는 개뿔이 미묘해? 여자들은 별거 아닌 걸 별거이인 것처럼 아리송하게 포장하려한다니까. 그냥 밥하기 싫은거지 뭐가 미묘하냐고? 그 여자 저는 세끼 밥 안 먹는대? 저 먹는 밥상에 수저 한 벌 더 놓으면 되는걸 가지고.”
“이거 보세요. 여자들도 세끼 밥은 먹지만 저 혼자 먹는 것과 하늘같은 식구들 밥상차리는 것과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요. 주부가 혼자 밥 먹을 때는 있는 반찬에 있는 밥에 대강 먹어도 되지만 다른 식구가 있을 때는 새 밥에 반찬 한 가지는 적어도 새 걸로 어우러진 밥상을 차려야지 주부 자신이 기쁜 거라구요. 혼자 먹을 때처럼 전자밥통에 남아 있는 밥과 있는 반찬을 내놓을 때의 그 기분 얼마나 더러운지 아세요? 받아먹는 사람보다 차려 내놓는 여자들 마음이 더 불편한 거라구요.”
민자는 속으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밥상 이야기를 치사하게 널어놓는 자신에게 점점 화가 났다.
“새벽마다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뜨게된지 꽤 오래되었는데…. 무슨 죽을병이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지만 죽음 자체가 나하고는 무관한 것 같던 세월이 다 지나갔다는 뜻인가 봐요. 그런데도 날이면 날마다 세끼 밥 해대느라 산에 들에 꽃이 피는지 새 잎이 돋는지 모르고 살잖아요. 며칠 전에는 아주 마음먹고 늦봄에 피는 분홍 철쭉을 보러 산에 갔더니 이미 다 지고 없더라구요.”
민자의 넋두리 비슷한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남편이 생뚱스럽게 물었다.
“근데 왜 자네는 대학 동창모임 일은 하면서 고등학교 동창모임은 관여 안 해? 잘 나가지도 않고.”
드디어 민자가 속으로만 하던 말을 밖으로 내뱉었다.
“아이구. 우리 삼식씨 좀 봐.”
“그게 무슨 말이야?”
“아, 그런 게 있어요. 내가 고등학교 동창회까지 챙겨봐요. 어떻게 되나. 이 정도로라도 세끼 밥 해대고 집안 일 하고 식구들 뒷바라지 할 수 나 있겠어요? 당신이야말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격이네요.”
“허어, 그런 말도 있나?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고? 그 참 재미있는 말이군. 내가 보기에 상신네 여편네들이야말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싸고들 있는 거야. 끼니 때울 꺼리가 없어 애태우던 우리 어머니들 생각해봐. 뭐라도 꺼리만 있으면 세끼 아니라 하루에 열 끼라도 기꺼이 하셨을걸. 참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싸고들 자빠졌네. 허이.”
남편의 요란한 반격에 눌려 할 말을 놓치고 깨작깨작 식사를 하고 있는 민자에게 먼저 식사를 끝내고 외출준비를 한 남편이 현관 쪽에서 소리쳤다.
“호강아! 요강 나간다.”
이 글을 읽고 공감해 버린 나는 뭐냐? ㅡ.ㅡ;
아무리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고, 변하더라도 밥 먹는 일은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결국 모든 일은 이 밥먹는 일에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니까.
이렇게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하루 세끼 밥. 하지만 밥 먹는 일이 가끔 귀찮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밥을 차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더 심한 듯하다. 나 역시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셨을 때, 아버지 밥 차려드리기가 정말정말 부담스러웠으니까~ 몇 십년을 그 밥차리기에서 편할 날 없는 우리 어머니들을 어떻게 잠시라도 밥으로 부터의 휴가를 보내드릴 수 있을까?